제        목 계약분쟁관리위원회 세미나_ 2026년 1차 후기
작  성  일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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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및 기획 배경 

최근 건설업계는 원자재가와 인건비 급등에 따른 채산성 악화에 더해, 협소한 도심지 시공과 복합 공종 간섭, 강화된 안전·환경 규제까지 겹치면서 극심한 분쟁에 맞닥뜨리고 있다. 분쟁의 양상은 갈수록 복잡해지는데 실무에서 해결책을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그동안 국내 건설 분쟁 논의는 주로 준공일이 밀리면서 발생하는 ‘공기지연’과 그에 따른 '공기연장 간접비'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현장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사뭇 다르다. 전체 공사가 전면 중단되지 않더라도, 발주자의 자재 수급 차질이나 작업 부지 미인도, 예기치 못한 지하 장애물 때문에 동일한 인력과 장비를 들이고도 작업 능률이 저하되는 ‘공사방해·간섭(Disruption)’이 비일비재하다. 지질 조건이 설계와 달라 터널이나 굴착면이 무너져 내리면서 장비와 인력이 꼼짝없이 서 있어야 하는 ‘현장상태 상이’ 손실도 만만치 않다. 공기연장 여부와 무관하게 시공사 입장에서는 고스란히 직접공사비의 증가 부담을 지게 되지만, 정작 계약 실무나 감정 영역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로 방치되어 왔다.

이 같은 실무적 어려움에 대해 업계와 학계, 법조계가 머리를 맞대 실질적인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뜻깊은 자리가 마련되었다. 한국건설관리학회 계약분쟁관리위원회와 법무법인(유) 율촌 건설클레임연구소가 공동으로 기획한 첫 번째 세미나가 지난 9월 10일(목)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타워 율촌 렉쳐홀에서 열렸다. 학회의 공정·사업관리 엔지니어링 역량과 법무법인 율촌의 건설 분쟁 법률 실무를 결합한 자리였던 만큼, 대형 건설사 법무·공무 담당자부터 발주기관, 전문 엔지니어, 법원 감정인 등 150여 명이 렉쳐홀을 가득 메웠다.

이날 행사는 필자(한봉희 계약분쟁관리위원장)의 사회로 시작되어, 조훈희 한국건설관리학회 회장의 개회사와 김남호 법무법인 율촌 부동산건설부문 대표의 축사로 이어지며 시종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2. 세미나 주요 내용
이번 세미나는 공사가 완전히 중단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생산성 저하(Disruption)와 작업대기 직접공사비 손실 입증에 관한 2개의 핵심 주제로 구성되었다.

2.1. 발표내용 요약
1) 방해/간섭에 따른 추가공사비 분석과 입증
제1발표를 맡은 임정주 공정계약연구원 대표는 국제표준인 SCL Delay and Disruption Protocol을 기초로, 국내 실무에서 가장 입증하기 까다롭다는 생산성 저하의 구체적 분석 틀을 잡았다. 임 대표는 먼저 공사기간이 늘어나는 지연(Delay)과 공사는 계속되지만 투입 대비 작업 효율이 떨어지는 방해/간섭에 따른 생산성 저하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사 중단 시에는 주공정(Critical Path) 분석을 통해 지연 일수를 산정할 수 있지만, 인력과 장비가 계속 투입되면서 생산성만 저하되는 경우에는 CPM 분석만으로 손실을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방해를 받지 않은 정상 작업 조건과 실제 작업 조건을 대조해 순수한 효율 저하분을 따로 떼어내 산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임 대표는 특히 추가공사비 입증을 위해 단순한 통계적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특정 사건이 생산성 저하를 불러왔다는 '구체적 인과관계'를 현장 기록으로 뒷받침해야 비로소 클레임의 설득력을 얻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분석 방법으로는 현장 내 정상 구간과 방해 구간의 생산성을 직접 대조하는 실측구간비교법(Measured Mile)을 최우선으로 꼽았고, 시스템 다이내믹스나 회귀분석 같은 기법도 함께 제시했다. 아울러 현장 데이터의 구비 수준이나 방해 요인의 성격에 따라 복수의 분석법을 교차 검증함으로써 합리적인 손실 금액 범위를 도출하는 것이 사법적 신뢰를 확보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2) 현장상태 상이로 인한 일시적 작업대기에 따른 추가비용 청구 
제2발표를 맡은 이은재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은 터널 굴착공사에서 빈번한 지질조건 상이에 따른 장비ㆍ인력 대기비용을 인정한 판결(부산지방국토관리청 발주 울산 국도 31호선 터널공사)을 중심으로, 직접공사비 보상의 실체적, 절차적 요건을 풀어냈다.

해당 현장은 설계 암질과 실제 지질 조건의 현저한 차이로 3개 터널에서 무려 36회의 붕락과 변위가 발생했다. 보강공사와 재설계가 이어지며 공기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터널 굴착 장비와 기능인력이 작업을 중단한 채 대기하는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 소송의 핵심 쟁점은 이러한 대기비용을 국가계약법상 ‘기타 계약내용의 변경(공사계약일반조건 제23조)’에 따른 추가 공사비로 청구할 수 있는지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계약내용 변경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이 간접공사비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며, 시공사의 책임 없는 사유로 작업방법이나 순서가 바뀌어 계약 당시 예상할 수 없었던 직접공사비(대기비용)가 발생했다면 당연히 조정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 또한 기존의 공기연장 간접비 소송과 본 터널 대기비용 청구는 대상과 성격이 완전히 다른 별개의 청구임을 명확히 했다.

이 수석은 당시 감정인이 현장 작업일보를 일일이 대조해 굴진일, 보강일, 대기일, 철수일을 엄격히 발라낸 뒤, 월별 대기 비율에 장비비와 인건비를 곱해 약36억여원의 직접공사비를 인정받았던 실제 감정 로직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실투입 증빙과 작업일보를 평소에 철저히 기록·보존해야 하며, 계약금액 조정 신청은 늦어도 준공대가를 지급받기 전에 반드시 서면으로 마쳐야 한다는 절차적 주의점도 빠뜨리지 않았다.

 


2.2. 종합토론
주제발표에 이어 필자의 사회로 진행된 종합토론에는 두 발제자와 함께, 법원감정인으로 다수의 감정 실무를 수행해 온 신광호 에스알엔지니어링 대표, 그리고 공공계약 및 건설 분쟁 전문가인 조원준 법무법인(유) 율촌 파트너 변호사가 패널로 참여하였다. 토론은 사회자의 쟁점 제시, 패널 간 심층 논의, 그리고 사전에 참석자들로부터 접수된 핵심 질의에 대한 응답까지 약 1시간에 걸쳐 밀도 있게 이어졌다.

토론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다뤄진 주제는 기술적으로 산정한 손실을 법률상 청구권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회귀분석이나 시스템 다이내믹스 등 고도화된 통계 모델이 등장하고 있으나, 판사나 중재인은 "통계적 상관관계가 높다고 해서 곧 법적 인과관계가 증명된 것은 아니다"라며 배척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패널들은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분석 모델 자체의 정교함에 머물지 말고, 작업일보ㆍ감리보고서ㆍ현장 사진ㆍ공문 등 1차 증거를 통해 사건과 손실 사이의 구체적 인과관계를 연결하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감정인 역시 시공사의 주장만 담긴 일방적 시뮬레이션은 채택하기 어려우며, 정상구간 실측치와의 교차 검증을 통해 모델의 현실 부합성이 입증될 때 비로소 감정서에 반영할 수 있다는 실무적 기준이 공유되었다.

또한 경험칙에 의한 일괄 공제의 적정성 문제도 다루어졌다. 발표에서 소개된 터널 사건에서 감정인이 '통상 15% 비작업 비율'을 직권 공제한 것이 보편적 관행인지에 대해, 패널들은 해당 수치가 모든 현장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며 정상 굴진 구간의 실측 데이터를 우선 확보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나아가 국내에서는 미국 MCAA의 생산성 저하 계량화 데이터에 준하는 실증 연구가 부재한 현실을 지적하며, 학회와 실무 차원에서 표준품셈 할증에 의존하는 기존 관행을 대체할 객관적 생산성 기준의 정립이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아울러 준공기한에 영향이 없는 비주공정(Non-Critical Path)의 생산성 저하를 어떤 법리로 청구할 수 있는지, 하도급 체제에서 Measured Mile 입증의 현실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감정액과 하도급 실제 정산액 간 괴리 문제, 장비ㆍ인력 대기비용과 공기연장 간접비 사이의 중복 청구 방지 전략, 그리고 분리 발주된 타 수급인의 공정 간섭 시 책임 귀속 등 현장 실무자들이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첨예한 쟁점들이 패널 토론과 사전 질의응답을 통해 폭넓게 논의되었다. 패널들은 하나같이 "원인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추가비용이 인정되지 않으며, 발생 사건과 기간, 투입 자원, 비용 항목을 구분하여 청구 근거와 실증 자료를 1:1로 대응시키는 정밀한 설계가 클레임 성패를 가른다"고 강조하였다.

 



3. 맺음말

그동안 공정과 관련된 국내 건설 분쟁은 ‘공기지연’과 '공기연장에 따른 간접비'라는 좁은 틀안에서 맴돌았다. 그 결과 다수의 현장에서 공사방해와 지질 상이로 직접비 손실을 보고도 권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 세미나는 '직접비 손실'의 보상 가능성을 법원 판례와 감정 실무 기법을 통해 입증하며 건설 클레임의 시야를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기술적 분석이 뒷받침되지 않는 법률 논리는 사상누각이며, 명확한 법률적 청구권이 뒷받침되지 않는 공학적 계산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학회의 엔지니어링 역량과 법무법인의 법률 전문성이 한데 모였을 때 비로소 현장의 정당한 권익을 지켜낼 수 있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한국건설관리학회 계약분쟁관리위원회는 이번 첫 공동 행사를 시작으로, 건설 현업에서 절실히 요구하는 실질적인 계약ㆍ분쟁 현안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공론화할 생각이다. 이날 오간 치열한 고민과 실무적 해법들이 현장 기술자들에게는 정당한 권리를 지키는 실질적인 무기가 되고, 발주기관과 사법부에는 합리적인 분쟁 해결의 기준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작성자] 
* 한봉희 계약분쟁관리위원회 위원장 / 한국건설관리연구원 부원장 / bonghee_han79@naver.com